11번 재발한 암 4기… 그래도 웃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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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암을 이긴 사람들
이희대 박사는 ‘암을 고치는 암 환자’다. 그의 인생 목표는 단 한 명의 암 환자라도 더 치료해주고 세상을 뜨는 것이다.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의 이희대(57) 박사는 국내 최고의 유방암 전문의 중 하나다. 지금도 매주 두 번 암 환자 수술을 집도한다. 그 역시 7년째 투병을 계속하고 있는 4기 암 환자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지요. 2003년 암 진단을 받자 부끄러운 생각부터 들었답니다.”이 박사가 환자들과 상담하는 진료실 구석의 화이트 보드에는 그의 병력이 빽빽하게 적혀 있다.
2003년 1월 대장암 2기 진단. 7월 대장암이 간암, 골수암으로 전이. 암 4기 진단. 이 박사는 재발 횟수와 수술 일자, 암세포 활동에 대한 기록을 꼼꼼히 남기며 자신의 병세를 연구했다.
“지난 7년간 모두 11번 재발했지요. 간은 세 번 절제했고, 대장과 직장 한 번씩, 골반 뼈 제거 수술도 받았습니다. 방사선 치료와 항암제 투약도 계속 했답니다.”
암 치료를 시작한 지 1년이 지날 무렵의 화이트 보드에는 암울한 기록들이 적혀 있었다. 이미 신체 네 부위로 퍼진 암세포는 각종 치료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커지고 있었다.
회복 가능성이 낮다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는 후배 의사들과 이를 알면서도 밝은 모습을 보여야 하는 시간이 계속됐다. 결국 이 박사는 2004년 2월 본인의 암 치료를 포기했다. “후배 의사에게 넌지시 물었어요. ‘힘들겠지?’ ‘예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럼 그만 하자’.”
마음을 비운 이 박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유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몇 개월 남지 않은 인생을 주위 사람들을 위해 활용하다 세상을 뜨기로 결심했다. 그는 우선 인터넷 암 동호회에서 암 상담을 시작했다. 인터넷에 실린 잘못된 지식을 바로 잡고 올바른 치료법을 전하기 위해서다.
라디오 채널인 극동방송의 의료 자문 프로그램에도 고정 출연했다. 항암제 복용 없이 식이요법만 사용한 지 반 년이 지났다. 마음을 비우고 지내던 이 박사는 예정된 시간이 지나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을 찾았다. “전이된 암세포 가운데 더 커진 놈도 있지만 오히려 줄어든 놈도 있었습니다. 캄캄한 밤중에 작은 빛을 본 느낌이었지요.”
멈출 줄 모르고 악화되던 암세포가 진정 국면을 보이자 이 박사는 다시 암 치료에 나섰다. 2004년 7월 간에서 암세포 제거 수술을 받았다. 수술이 효과가 있자 다음에는 더 이상 방사선 치료를 계속 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던 골반 뼈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몸에 암세포를 퍼트린 진원지인 대장암 세포는 항암제를 복용하며 억눌렀다.
수술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다. 엉덩이와 척추 아래를 연결하는 관절 일부를 잘라내 다리를 절고, 말초 신경이 손상을 입어 정기적으로 진통제를 먹어야 했다. 항암제 투약으로 하루 종일 토하고 머리카락도 빠졌다. 갑자기 찾아온 통증 때문에 새벽잠을 이루지 못하고 몸부림 친 일도 잦았다.
“환자의 고통을 모른 채 그냥 힘내시라는 말만 했던 것 같아 부끄럽더군요. 요즘에는 환자들에게 제 몸에 난 수술 자국을 보여주며 힘내라고 합니다. 당신도 이길 수 있다고 하면서요.”
2005년 6월 이 박사는 암과의 싸움에서 전선을 넓혀 나갔다. 한국유방암학회 이사장에 취임한 것이다. 강남세브란스병원에 복귀해 암센터 소장으로 활동도 시작했다. 특히 환자를 직접 돌보기 위해 앉아서 암 수술을 집도하는 특수 의자를 개발해 치료에 나섰다. 단 한 명의 환자라도 더 치료하고 세상을 뜨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환자를 치료하는 틈틈이 몸 상태를 체크하던 이 박사는 병세가 조금씩 호전되는 것을 발견했다. 1년에 두 번에서 세 번, 세력을 확장하던 암세포의 재발 빈도가 2006년을 넘어서며 줄어든 것이다. 특히 지난 한 해 동안에는 단 한 곳도 재발하지 않았다. 항암제 투약도 중단했다. 하지만 아직 완치는 아니다.
그의 몸 곳곳에는 여전히 암세포가 퍼져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암세포와의 불안한 공존이 계속되는 중이다. 이 박사는 암세포의 활동이 둔화된 이유를 두 가지로 생각한다. 우선 현대의학의 힘이다. 수차례의 수술과 항암제, 방사선 치료로 암세포가 힘을 잃었다. 여기에 암을 이기는 생활습관이 더해졌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암세포가 있습니다. 다만 면역세포가 암세포보다 강해서 표가 나지 않을 뿐이지요. 저는 건강에 도움이 되는 습관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박사는 야채 위주의 식이요법을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 30분 이상 불편한 몸을 이끌고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땀이 약간 날 정도가 좋습니다. 땀으로 체내 노폐물이 배출되면 몸과 마음 모두 상쾌해지거든요.”
그는 마음을 편하게 먹는 것도 중요하다며 산책하며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라는 처방도 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면 면역력이 자연스럽게 높아져 암세포가 힘을 쓰기 더욱 어려워진다. 마지막으로 그는 암을 이기겠다는 강한 의지를 꼽았다. “흔히 4기를 암 말기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말기 암은 없다고 봅니다. 4기 다음은 5기입니다. 암을 이겨낸 단계지요. 암을 이기겠다는 오기만 있으면 5기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제가 좋은 증거 아니겠습니까!”
이희대 박사 ‘암과의 싸움’
2003년 1월 대장암 2기 판정. 직장과 대장 연결 부위 수술. 6월 간, 뼈로 암세포 전이. 4기 판정 항암제, 방사선 치료 시작 11월 간 등 다른 부위에 암세포 전이. 간 절제 수술 2004년 2월 간 전이 재발. 암 치료 포기 3월 유서 작성. 죽음 준비 6월 암 검사. 희망적 결과 7월 간 절제 수술 8월 골반 방사선 치료 9~11월 암세포 증식 속도 느려짐 2005년 6월 한국유방암학회 이사장 취임 8월 대장암 수치 증가. 골반 뼈 제거 수술 9월 골반 뼈 방사선 치료 2006년 1월 간암 재발. 간 절제 수술 5월 방사선 치료 재개 8월 암 세포 활동량 줄어듦 2007년 4월 방사선 치료 2008년 5월 방사선 치료(골반) 이후 암 재발 없음 암 이기는 방법 -야채 위주의 식이요법 -매일 30분 땀 날 정도로 걷기 -좋아하는 노래 부르며 마음 편하게 먹기 -암 이기겠다는 강한 의지 -병원에서 꼼꼼히 몸 상태 점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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